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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터 : 머물다 흐르는 [ Water : Linger and Flow ]
Thu Mar 27 2:12PM
수프, 잔디, 맨발, 마른 입술, 겨울
축축한 바닥 위,
내리는 비가 소리 없이 수많은 원을 그렸다.
토마토 죽이 제대로 끓기 시작했다.
거품이 솟아올랐다가 (팟-!) 터져서 사라진다. 균열을 찾아 흐르는 열기.
빈 그릇을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둔다. 두 눈이 창밖을 응시한다.
아무도 없다.
쓸쓸한 바닥.
푹신한 소파. 문득 떠올랐다.
비가 온 뒤 촉촉하게 젖은, 선명한 푸른 잔디.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던 풀잎의 감촉.
잔디 가닥가닥마다 맺힌 이슬.
날것 그대로의 모든 감촉. 맨발.
차가운 바람에 웅크려 숨은 발가락들. 두려움.
스스로 내맡겨 감당하기엔 너무 큰 자유.
비에 젖어 창백해진 바싹 마른 너의 입술이 어리다고 생각했다.
채도 낮은 하늘에서 비행기가 추락했다.
떨어지는 깃털.
느린 그라데이션으로 밤이 왔다.
비는 이제 그친 듯하다.
창문을 열어 공기를 한숨에 들이마신다. 겨울.
박미아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의 다감각적 느낌을,
장편의 시(글)로 기록합니다.”